물 위의 도시인 이탈리아 베네치아. 우리에겐 베니스로 더 잘 알려진 이 도시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그 어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낭만과 추억을 선사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산타루치아’는 이탈리아인의 풍미를 느끼게 해준다. 산타루치아를 듣고 있다 보니 얼마 전 세상을 뜬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생각났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그로부터 산타루치아를 다시금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왕 시작한 김에 노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이탈리아하면 생각나는 노랫말이 무엇인가. 작렬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사랑을 노래한 ‘오 솔레미오’ 일까. 그러나 작렬하는 태양만으론 이탈리아를 다 표현하기는 힘들다. 한때 세계문명을 제패했던 이탈리아의 문화를 맛보려면 지중해를 따라 둘러보는 것이 제격이다. 그중에서도 물, 바람, 가면무도회의 도시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야만족 대학살 피해 바다 위 도시 건설베네치아는 118개의 섬과 400여 개의 다리로 이뤄진 도시다. 섬과 섬이 다리로 연결돼 있어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왜 하필 이런 곳에 도시가 형성된 것일까. 베네치아 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베네치아는 5~6세기쯤 이탈리아를 침략했던 훈족, 고트족에게 쫓겨난 사람들에 의해 건립된 뉴타운이다. 생각해 보라. 훈족, 고트족의 학살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런 곳에 도시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5세기 초반 야만족으로 알려진 훈족, 고트족은 해안가에 위치한 말라모코 주민들을 전부 몰살했다.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도망칠 곳은 오로지 바다뿐이었다. 다행히 바다 밑이 진흙층으로 돼 있다는 사실을 안 유민들은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송판과 자갈, 화산재 가루로 집을 지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베네치아가 세워진 동기다. 이 아름다운 도시가 야만족의 대학살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산타루치아다. 나폴리 수호신의 이름에서 따온 산타루치아는 이 지역 해안거리의 지명이다. 산타루치아 역은 베네치아 관광의 중심으로 구내에 각종 편의시설, 식당, 샤워실, 환전소 등이 들어서 있다. 베네치아를 어떻게 둘러봐야 할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산타루치아 역을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 이곳에 가면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배낭 여행족을 볼 수 있기 때문. 이들에게서 베네치아 관광을 위한 값진 정보를 얻는 것도 삶의 지혜다.
베네치아에는 일반적인 교통수단인 버스, 택시가 없다. 물의 도시답게 베네치아는 대부분 배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데 바포레토로 불리는 수상버스와 마토스카피라는 수상 택시로 구분된다. 여행자 대부분이 이용하는 수단은 값이 싼 바포레토로 대운하를 중심으로 여러 곳의 선착장에서 베네치아 곳곳을 연결해 준다. 그러나 조금 여유가 있다면 마토스카피를 타라고 권하고 싶다. 정해진 길이 아닌 베네치아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엿볼 수 있다는 이유로 마토스카피는 베네치아의 낭만 그 자체다. 이들 수상택시, 수상버스는 낮보다는 밤이 더 운치가 있다. 늦은 밤 전등불로 환해진 도시를 한가로이 배타고 가는 것을 상상해 보라. 물론 베네치아의 명물인 곤돌라는 마토스카피보다도 더 비싸다.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 들기 때문에 큰 맘 먹지 않고는 여간해서 타기가 힘들다. 그래도 정 타고 싶다면 최대 6명까지 팀을 구성해 보라.
산마르코 성당 광장·리알토 다리 등 볼거리 풍성베네치아는 도시 곳곳에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있다. 그중 부호 페사로 가문의 저택인 카페사로가 가장 유명하다. 이 곳에 가면 국내에 잘 알려진 클림트, 칸딘스키, 샤갈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1940년에 지어진 뒤 지금은 프란케티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카도르도 유명하다. 이 건물은 원래 벽을 황금으로 장식했다고 해서 ‘황금 궁’으로 불리기도 했다.
베네치아 시내를 관통하는 대운하를 따라 가다 보면 리알토라는 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탈리아 음식점을 연상시키는 이 다리는 여느 베네치아 다리와는 구조부터가 다르다. 이 다리의 역사 역시 야만족과 관련이 있다. 야만족의 침입에 시달려야 했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곳으로 피신해 오면서 십자가 모양의 나뭇가지를 입에 문 비둘기의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그 비둘기가 앉은 곳이 바로 이 리알토 다리다. 야만족으로부터 살아남은 그들은 이 지점에 다리를 세웠고 이 곳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리알토 다리는 원래 목조였지만 16세기 말 안토니오다 폰테라는 건축가의 설계로 지금의 석조다리로 변신했다. 그래서인지 리알토 다리 부근에는 상점과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상점에 들르면 색색의 유리를 녹여 만든 장식품을 볼 수 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성 마르코의 유해를 옮겨와 안치한 산 마르코 성당은 9~15세기에 걸쳐 지어진 건물로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성당 오른편 회랑에는 십자군 운동 당시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보물들이 전시돼 있는데 그중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사용된 못과 가시관 가시가 단연 눈에 들어온다.
산 마르코 성당 앞 광장도 베네치아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이 광장은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표현한 곳으로 유명하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16세기부터 18세기에 지어진 것들로 지금은 국립박물관과 갤러리 등으로 쓰이고 있다. 이 광장을 방문한다면 노천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광장 중앙에 우뚝 솟은 높이 99미터의 종루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이 꽤 운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산마르코 광장이 화려함의 상징이라면 카페 플로리안은 이탈리아 지성의 결정체다. 1970년 문을 연 이래 이 카페는 장자크 루소, 바이런, 괴테, 바르너, 토머스먼, 발레리 등 세계적인 지성들이 만나 담소를 나누던 곳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카페를 근대사상의 출발지라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 카페에 가면 ‘모반과 몽상, 마귀와 천사 그리고 공룡을 제외하고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글귀가 걸려 있는데 과연 근대사상의 출발지라고 할 만하다.
산 마르코 성당 오른편에 위치한 두칼레 궁전은 9세기 베네치아 총독의 사저로 쓰였던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칼레 궁전을 나와 왼쪽으로 향하면 한 다리 위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리에 서 있는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대운하 쪽을 향해 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탄식의 다리. 이 다리는 두칼레 궁과 피리지오니 누오베라는 감옥을 연결하기 위해서 건립한 것으로 두칼레 궁에서 판결을 받고 나오던 죄수들이 이 다리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긴 탄식을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또 이 다리는 작가이자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가 탈옥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베니스 영화제·가면축제로 유명베네치아는 축제의 도시다. 우선 이곳은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니스 영화제가 매년 열린다. 매년 8~9월 사이 열리는 이 영화제의 시상식장을 보려면 리도 섬 선착장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그러나 베니스 영화제보다 더 유명한 것이 바로 가면축제다. 카르네발레로 불리는 가면축제는 금욕이 시작되는 사순절 직전에 열리는 행사로 이 때 베네치아를 가보면 각양각색의 화려한 가면들을 만날 수 있다.
가면과 함께 입는 전통복장은 판탈로네, 콜럼비나, 아르레키노, 브리겔라 등이 있다. 그중 판탈로네는 베네치아 상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지역을 대표하는 트레이드 마크다. 콜럼비나는 가면 없이 흰색 원피스와 초록 앞치마를 두르고 작은 모자를 쓴 모습으로 일반적으로 하녀를 뜻한다. 한편, 아르레키노와 브리겔라는 비천한 하인과 교활한 인간을 상징한다.
베네치아는 지리적인 위치를 활용해 일찍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했다. 동양에서 건너간 문화가 유럽 전역으로 퍼진 것도 베네치아의 공이 컸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베네치아는 전 세계로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도시 전체가 늘 북적거린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도시 베네치아. 그곳에서는 다양한 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열정이 느껴진다. 그래서 베네치아의 풍경이 그토록 아름다운가 보다.
베네치아 가는 길 베네치아에 들어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만약 시계 방향으로 유럽을 돌고 있다면 오스트리아 빈에서 야간열차를 타는 것이 좋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다면 로마, 스위스를 경유해 가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로마에서 간다면 낮에는 초고속 열차인 에우로스타 이탈리아, 밤에는 완행열차를 타야 한다.